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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500명 가량의 인파와 뙤약볕은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버틸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런 날씨에 그 이벤트 공연 하나를 보겠다고 인당 약 499명과 부대끼느냔 말이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열이 합쳐져 피부를 뜨겁게 달궜다. 더워도 소매는 내린지 오래. 손차양을 만드느라 팔이 아플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쿵쿵 울리는 스피커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에 속이 메슥거렸다. 아니, 이건 아침부터 이랬던가. 바니바니가 건네주었던 얼음물은 거의 녹아 흔들릴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병을 제 뺨에, 목에 대었다.
생각해보니 한 끼도, 무엇 하나도 먹지 않고 지금 이 상태다. 차오르는 욕지기를 간신히 삼켰다. 들어간 것도 없는 위를 게워봤자 나오는 게 위액밖에 더 있겠는가. 이제쯤이면 임무라도 나가야겠다고 나섰던 과거의 내가 저주스러운 것이다. 새카만 흑발은 뜨겁게 달궈져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도 뜨뜻하니 질린다.
잠시, 현기증이 났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뱉으며 제자리에 못박혔다.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회사로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그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에어컨도, 샤워할 수 있는 찬 물도, 마실 물조차도 여의치 않은 회사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소중한 동료 친구들에게 능력과용을 유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렷다. 마치 내 능력을 이용해 전투형 적군을 상대하라는 미션을 받은 듯한 막막함. 회사 안에서의 피서는 글렀다. 완전히.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다. 자신의 친우 중에 이 상황에 걸맞는 구원자가 한 명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 친우가 구원자에 걸맞는 성격을 가진 인재는 아니다. 거기다 세시간 동안 답장이 없는걸로 보아 읽씹당한 것이 분명하고. 아니면 내 번호를 차단했든가. 그러니까, 가능성이ㅡ
지이잉.
[개소리 마.]
없다는 소리다. 액정 너머로까지 짜증이 묻어나는 텍스트를 가만 바라보다가 그 번호로의 전화 수신을 차단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선차단이다. 나중에 차단했다고 말해줘야지. 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무그늘로 걸음을 옮겼다.
***
물건만 잠시 가지러 집에 들른 아이테르의 꼬질꼬질한 모양에 그의 아버지는 질색을 하며 샤워실로 그를 밀어넣었다. 덕분에 나름 뽀송뽀송한 상태로 복귀한 그를, 크툴루는 그녀 특유의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아이테르가 그녀 앞에 와르르 내려놓는 것을 따라 움직였다.
"이게 뭐야...?"
"물방석, 물베개."
뭐 그리 거창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가 싶다. 아이테르가 딱히 다른 말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 중 하나를 들어 안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금세 물로 가득찬 방석을 받아 제 다리 위에 얹은 아이테르의 표정이 이 세상 행복을 다 담은 것처럼 변했다. 물베개와 물방석은 언제나 여름 날 때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두번째 구원자였으니.
"너도 하나 가질래, 바다야?"
"물 안 샐까..."
"가끔 터지긴 해..."
새면 뭐 어떤가. 이렇게 시원한데. 크툴루가 거절은 하지 않는다는 듯 물이 채워진 방석을 하나 깔고 앉았다.
"아이테르, 너 바지 젖는거 같은데."
.....그래, 새면 뭐 어떤가. 시원하잖아.
500명 가량의 인파와 뙤약볕은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버틸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런 날씨에 그 이벤트 공연 하나를 보겠다고 인당 약 499명과 부대끼느냔 말이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열이 합쳐져 피부를 뜨겁게 달궜다. 더워도 소매는 내린지 오래. 손차양을 만드느라 팔이 아플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쿵쿵 울리는 스피커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에 속이 메슥거렸다. 아니, 이건 아침부터 이랬던가. 바니바니가 건네주었던 얼음물은 거의 녹아 흔들릴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병을 제 뺨에, 목에 대었다.
생각해보니 한 끼도, 무엇 하나도 먹지 않고 지금 이 상태다. 차오르는 욕지기를 간신히 삼켰다. 들어간 것도 없는 위를 게워봤자 나오는 게 위액밖에 더 있겠는가. 이제쯤이면 임무라도 나가야겠다고 나섰던 과거의 내가 저주스러운 것이다. 새카만 흑발은 뜨겁게 달궈져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도 뜨뜻하니 질린다.
잠시, 현기증이 났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뱉으며 제자리에 못박혔다.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회사로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그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에어컨도, 샤워할 수 있는 찬 물도, 마실 물조차도 여의치 않은 회사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소중한 동료 친구들에게 능력과용을 유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렷다. 마치 내 능력을 이용해 전투형 적군을 상대하라는 미션을 받은 듯한 막막함. 회사 안에서의 피서는 글렀다. 완전히.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다. 자신의 친우 중에 이 상황에 걸맞는 구원자가 한 명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 친우가 구원자에 걸맞는 성격을 가진 인재는 아니다. 거기다 세시간 동안 답장이 없는걸로 보아 읽씹당한 것이 분명하고. 아니면 내 번호를 차단했든가. 그러니까, 가능성이ㅡ
지이잉.
[개소리 마.]
없다는 소리다. 액정 너머로까지 짜증이 묻어나는 텍스트를 가만 바라보다가 그 번호로의 전화 수신을 차단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선차단이다. 나중에 차단했다고 말해줘야지. 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무그늘로 걸음을 옮겼다.
***
물건만 잠시 가지러 집에 들른 아이테르의 꼬질꼬질한 모양에 그의 아버지는 질색을 하며 샤워실로 그를 밀어넣었다. 덕분에 나름 뽀송뽀송한 상태로 복귀한 그를, 크툴루는 그녀 특유의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아이테르가 그녀 앞에 와르르 내려놓는 것을 따라 움직였다.
"이게 뭐야...?"
"물방석, 물베개."
뭐 그리 거창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가 싶다. 아이테르가 딱히 다른 말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 중 하나를 들어 안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금세 물로 가득찬 방석을 받아 제 다리 위에 얹은 아이테르의 표정이 이 세상 행복을 다 담은 것처럼 변했다. 물베개와 물방석은 언제나 여름 날 때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두번째 구원자였으니.
"너도 하나 가질래, 바다야?"
"물 안 샐까..."
"가끔 터지긴 해..."
새면 뭐 어떤가. 이렇게 시원한데. 크툴루가 거절은 하지 않는다는 듯 물이 채워진 방석을 하나 깔고 앉았다.
"아이테르, 너 바지 젖는거 같은데."
.....그래, 새면 뭐 어떤가. 시원하잖아.